어제는 굴미역국을 해먹었다. 미역국에 굴을 넣고 해 본 건 결혼 10년만에 처음이었는데 그 감칠맛나는 시원함에 한순간에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다. 왜 이런 걸 이제서야 해 본 걸까, 갑자기 식욕도 열정도 마구 샘솟는 기분. 역시 사람은 맛있게 잘 먹어야 인생이 즐거워지는 거구나. 마침 근처 김밥집에서 가끔 사먹곤 하는 땡초김밥에 들어 있는 매운 멸치무침을 마음대로 따라해 본 걸 곰도리가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더 음식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 하루에 하나씩만 만들어 보자구. 어차피 책도 하루에 몇시간도 못 읽으니까 이것저것 관심을 분산시키고 찔끔찔끔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림을 좀 그려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앉아서 10분도 집중을 못하니 마음만 급하고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10분 그리고 한두시간 다리 풀고 또 10분 그리고... 하루종일 해 봐야 도저히 몰두할 수가 없는 거다. 맥이 빠져 며칠 시큰둥해 있다가 어제밤에는 소파에 기댄 어설픈 자세로 그림책에 있는 사과를 따라 그려 보았다. (사실 눈이 아파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대충 옆에 있는 스케치북을 집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그려놓고 보니 오, 제법 사과같은 걸? 저번 그림보다 조금 나은 듯 보이는 것이다. 그림도 자꾸 그리다보면 아무리 재능없는 사람도 조금은 늘지 않겠는가. 요렇게 생각하며 희망을 가지기로 했다. 하루에 사과든 토마토든 아주 간단한 걸로 딱 하나만 그리는 거다. 욕심 부리지 말고.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매일 산책갈 때나 마트 갈 때나 병원 갈 때나 항상 끼고 다니던, 내 체온을 조금이나마 지켜주었던 장갑이다. 산책 다녀올 때 오른쪽 장갑을 빼 들고 뭘 하다가 어딘가 떨어뜨렸나 보다. 워낙 추위에 약하고 특히 손발이 차다는 걸 아는 곰도리가 당장 장갑 하나 새로 사자고 한다. 하지만 안 사도 돼. 한쪽은 장갑끼고 한쪽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돼. 하고 대답했다. 겨울이 거의 끝무렵이기도 하고, 정말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바보스럽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서 일년 후에 새 장갑을 사기로 했다. 필요한 것을 일년 쯤 꾸욱 참다가 장만하는 것도 기분좋은 느낌일 것이다. 조금 모자라고 조금 어설프게 생활하는 것은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감각을 벼려주는 것 같아서 참 좋다.
분류 : 나니도리 2009. 2. 10.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