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두 문명은 역사기록에 의한 기원전 18세기 힉소스족의 이집트침략이전부터 각 지역들이 서로 활발하게 경제적,문화적으로 교류해왔다. 고대사의 '비옥한 초승달 fertile crescent'
활발한 교류의 흔적들 :
노아의 전설/수메르의 서사시 <길가메시 Gilgamesh>의 우트나피시팀의 전설
신화에서의 유사성
페니키아를 매개체로 한 그리스와 오리엔트의 활발한 교류(페니키아인-고대 지중해무역)

페니키아 이야기 :
광산자원이 많은 서쪽 끝자락의 에스파냐를 맨먼저 개척한 페니키아.
페니키아 최대의 식민지 - 카르타고, 카르타고 최대의 식민지 - 에스파냐)
페니키아의 가장 큰 영향 : 페니키아 문자 (고대 지중해세계 전역의 lingua franca) - 상거래에 이용되면서 자연스럽게 문자통일로 이어짐 (문자의 통일은 문명의 통일로 향하는 지름길)

육로뿐만 아니라 아라비아반도를 돌아 해로로 이집트까지 가기도 한 메소포타미아인들. 
탄생기와 초기 성장기가 지난 뒤 두 문명은 한데 묶여 오리엔트 문명을 이룸 - 훗날 서양문명의 씨앗이 됨.

인더스문명
문명이 소멸되었음. 광역의 오리엔트 문명권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문명실전의 공식적인 이유는 기원전 18~17세기에 북쪽에서 사나운 철기민족인 아리아인의 침략.
인더스문명은 오리엔트문명의 변방이며, 그랬기에 내외적 요인들(자연재해, 국가체제의 후진성, 아리아인의 침략등)이 결합되어 수명을 다한 마이너문명이라 볼 수 있음.

중국에서 일어난 황허문명
농경을 바탕으로 한 문명 - 이동성이 적음 - 문명의 탄생지가 곧 문명이 계속 성장하는 토양이 됨 - 덕분에 오리엔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문명이 튼튼해지고 대규모화될 수 있었음 - 출발부터 농경중심이었던데다 자체 인구와 면적이 충분했으므로 오리엔트문명처럼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필요치 않았다 (오리엔트 세계에서는 일찍부터 국제사회를 이루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문명의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발전했지만, 중국에서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황허 유역의 강력한 중심을 형성) -> 동양문명의 정태성과 서양문명의 역동성으로.

동양문명의 중심은 중국의 중원이라는 땅덩어리. 서양문명이 중심은 지중해라는 바다.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의 차이.
(결정적인 것은 지리적인 요인)

참고 및 출처 : <<역사>> 남경태, 들녘


분류 : 공부 2008. 12. 29.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