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고대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2500여년 전의 그리스세계는 그리스로마신화같은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매우 오래된 까마득한 태고적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달리 보면 그렇게 오래 된 시절도 아니다. 엄마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 하고 거슬러 100번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과거이고, 100억년이 된 우주의 나이와 수십만년이 되는 현생인류의 나이와 비교해 본다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시절은 아니어도 놀랄 정도로 먼 과거도 아니다. 그 시대의 철학과 철학자들에 대해 읽기를 반복하다보니 이제 그 시간적인 거리감이 예전만큼 멀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상권-고대와 중세>를 읽다가 잠정 포기해 버렸다. 서로 다른 저자가 쓴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는 것의 재미는,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다양성에도 있지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른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이해되기도 하는, 앎과 배움을 좀 더 다각적으로 접하게 되는 데에도 있다. 철학의 경우  철학자체의 난해함때문에 특히 후자에 더 기대를 하며 독서를 하고 있다. 남경태의 <철학>이후 철학입문서라고 불리는 대학교재들을 4권째 보고 있는데, 한권 한권 읽을수록 이해가 심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을 때는 알 것 같은 것들이 다음 책을 읽으면 모르겠고, 이렇게 이해했던 것들이 다음번에는 저렇게 이해되는 식이다. 고대철학의 경우 남아 있는 기록이 완전하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도 한 가지 이유라 생각하지만, 철학 자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된다. 많은 부분 그 뿌리에는 인간의 조건이자 한계라고 느껴지는 언어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는 플라톤까지는 겨우겨우 따라갔으나 아리스토텔레스로 들어가서는 몇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아 일단 책을 덮었다.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입문서로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인 것 같아 기대가 컸는데, 지금 내가 쉽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책은 아닌 듯 싶다.

그래서 다시 선택한 책은 거스리의 <희랍 철학 입문>이다. 고대철학은 미술사에 있어서의 고대미술처럼 한번 훑고 넘어갈 수가 없다.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그 이후의 중세철학, 근세철학, 현대철학은 말그대로 모래성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거스리의 <희랍 철학 입문>은 2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이어서 일단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책의 절반정도를 보고 있는데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몇 가지 낱말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어 아주 좋다.
분류 : 공부 2009. 8. 25. 17:45
제목 : 고대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