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두 바닷가를 갔다. 포항의 월포리와 부산의 광안리. 월포리는 역시 동해답게 서늘한 바람과 높은 파도가 일렁인다. 광안리는 남해답게 얕고 따뜻하고 평화롭다.  광안리는 내가 태어나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시절까지 살았던 고향이다. 어릴 때 사진속에 빡빡머리를 하고 엄마품에 안겨 있던 흑백사진속의 그곳이 바로 광안리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아마도 매년 몇번씩은 친구들과 광안리를 찾았던 것 같다. 놀러가면 바다, 바다하면 광안리, 나에게는 늘 부산보다는 광안리가 더 고향처럼 느껴졌다. 광안대교가 생기고 해운대가 삐까뻔쩍하게 개발된 이후 그 동네는 발길을 끊었다. 한밤의 조명이 이쁠지는 몰라도 백사장은 짧아지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는 어느새 그 동네의 부록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님 아빠님이 얼마전 다시 광안리로 이사를 가서 그동안 끊었던 발길을 다시 돌려야 할 이유가 생기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광안리는 알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곰도리는 한물간 유원지처럼 황폐하고 쓸쓸한 느낌이라고 한다. 대구의 수성유원지처럼. ㅎㅎㅎ 그러고보니 대구 수성못의 한물간 유원지의 느낌이 확 와닿는다. 오랜만에 걸어본 광안리의 백사장에서 어린 시절의 그 달콤쌉싸름하고 가슴뛰던 짜릿함이 생각나 쓰윽 미소를 짓는다.   

곰도리를 그렸는데(오른쪽 그림 참조), 곰도리가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하며 나를 자꾸 갈군다. '이렇게 할배같고 턱선이 없구나'하며. 내가 사람을 그 사람 느낌을 살려서 그릴 줄 알면 색상배합도 할 줄 몰라 끙끙거리고 있겠냐규~. 나의 어리둥절한 초짜실력을 알면서도 우리 곰도리는 그림만 그렸다하면 생트집을 잡는다. 곰도리를 그리는 날이면 '우리 곰도리 이렇게 안생겼고, 정말 잘 생겼고, 절대 할배 아니고, 턱선이 유려하거든?' 하며 한시간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그래도 그림이 눈에 띌 때마다 새로운 트집을 잡으시는 우리 곰돌군. 곰도리님, 오빠, 자기야, 여보야, 당신 엄청 멋져요!! ㅋㅋㅋㅋ

눈은 인상주의와 미술사전반에 있어야 하는데, 마음은 벌써 현대미술로 달아나고 있다. 몇달전에 읽은 <인상주의의 역사>와 <후기인상주의의 역사>는 아직도 리뷰를 올리지 못한 채 소파에 나뒹굴고 있고 곰브리치와 잰슨 할아버지들의 서양미술사 전반을 아우르는 책들도 두번째 독서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같은 페이지에 펼쳐져 있는 중이다. 세잔, 고갱, 고흐로부터 이어지는 모던 화가들을 하나 둘 접하게 되면서 중세나 르네상스, 또는 인상주의의 시대로조차도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한번씩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화가이름을 툭 던져주고 가시는 낭만고등어님덕분에 찾아보게 된 보나르와 나비파, 다리파,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등 거세게 터져나오는 화가들과 다양한 그림들의 홍수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북리뷰 진도는 '르누아르'와 '모네'의 차례인데 마음은 조르조 모란디, 키르히너, 보나르, 뷔야르, 러시아미술, 독일미술, 표현주의 등으로 휘리릭 도망을 다니고 있으니. 게다가 현대미술로 넘어오면서 장르의 구분도 점점 사라지고 추상미술에 사진, 인테리어, 각종 디자인 등으로 이슈가 방대해지고 있어 갈수록 태산이다. 컨템포러리 미술은 공부라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기준이 없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처음 미술사로 삼천포 빠졌을 때는 몇달이면 다시 철학과 논리학, 역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몇년은 족히 걸릴 듯.. 다 함께 공부한다는 건 빛깔좋은 꿈이었을 뿐, 한꺼번에 여러 분야로 집중하기는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해야할 공부가 많은 것이 아직은 너무 즐거우니 ㅎㅎㅎㅎㅎ 십년, 이십년, 삼십년 한번 해보는 거다. 참, 부산에서 엄마님께 성경책까지 하나 훔쳐왔다. 멋져부러~ ㅎㅎㅎㅎ
분류 : 그림 2009. 4. 14. 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