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사고>는 예술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레비스트로스의 예술적 기질에 대해 생각했고, 확신했다. 그는 섬세하고 대담한 정신을 소유한 예술가이다. 무질서속에서 질서와 조화를 발견하는 통찰력, 종합과 통일에서 다양성과 변화를 음미하는, 심미안을 가진 아티스트다. 재기를 부리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깊고 풍부한 정신은 빛을 발하는 법인가 보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를 가진 브리콜뢰르이다.
우리는 자주 과학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예술에서 과학을 발견한다. 서로 가장 먼 거리에 있을 법한 과학과 예술이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그들의 공통적 본질 즉 질서를 향한 추구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엄밀한 과학임과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이 표현이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사고를 어쩌면 1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난해한 독서가 눈을 뗄 수 없는 유려한 디자인작품이나 완전히 동화되고픈 음악처럼 감동적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레비스트로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점은 그가 구조주의의 태두라는 사실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맞닥뜨린 말들이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탈구조주의', '구조주의언어학', '구조인류학' 등이었으니, 한마디로 풀어야 하지만 너무 어려운 과제같았다고 할까.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주의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었다고 하니, 구조주의 이후의 줄줄이비엔나같은 논의들을 떠올려 볼 때, 내게는 부담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야생의 사고>를 읽어보니, 구조주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막연히 그림그려지고, 그에 대한 논의와 반향, 열정과 비판들이 어떤 의미속에 위치하는지 어렴풋한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예고(?)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수많은 추상적 개념어들과 철학적 난해함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로 그 이유때문에 사고력훈련과 개념연습에 이 책이 굉장히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으로 인해 프로이트, 융 같은 정신분석학과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을 비롯한 언어학/문화인류학/기호학, 루소처럼 레비스트로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 등, 다양한 관심사로 한 발 내딛게 된다. 또한 그동안 의무감같은 관심(사실은 무관심)만 갖고 있었던 신화학에 대해서도 진짜 관심을 조금 갖게 되었다. 더불어 또 하나의 기분좋은 수확이라면, 인류학을 접하면 접할수록 점점 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심지어는 근대의 문학에까지 관심이 생긴다는 사실. 물론 근대문학에 대한 관심은 아직은 문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과거에 대한 (왕조식 역사가 아닌) 문화인류학적인 모습들을 엿보고 싶어서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작품들은 문학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고,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야생의 사고>를 막연한 느낌으로 읽었지만, 역시 이 책에서도 문학과 철학, 또는 예술과 과학이 마음을 끄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끼며,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적 성향과 저작에 그의 개인적 기질이 다분히 녹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 이렇게 레비스트로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 곰곰 생각하다보니 문득, 레비스트로스가 예술가적 기질을 가졌다는 사실 이외에,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구조지향 이론이 모더니즘의 그 모던함의 체계(?)와 아주 닮았다는 인상을 줄곧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완성도높은 모더니즘작품에서 볼 수 있는 대립적인 양극 요소의 절묘한 조화, 서로 배타적인 요소들이 거리를 좁히고 마주보고 손잡고, 춤추고 하나가 되어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탄생하는 그 음악적인 리듬. 그리고 통일된 하나에서 여러 모습들이 조화속에 개성을 드러내는 화음...! 어쩌면 그를 너무 피상적으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열길 깊이의 <야생의 사고>를 한길의 인상으로 표현한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박한(?) 원주민의 세계에서 엄밀한 구조를 발견하고 그 구조가 득의양양한 서구의 세련된 문명(?)의 골격과 다르지 않음을 대담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나는 진정한 모더니스트의 모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 마음에 각인된 레비스트로스는 따뜻한 얼굴을 한 모더니스트,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위해 노래하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이다.
분류 : 공부 2010. 1. 11.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