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도서관에서 빌려 온 첫번째 책, 코플스톤(Copleston, Frederick Charles)의 <그리스 로마 철학사>를 읽으며 작은 고민에 빠졌다. 그 이유는 코플스톤이 보통 아저씨가 아니라 신부님이라는 데 있다. 코플스톤은 카톨릭 신부이며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철학자 중 신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꽤 있기 때문에 단순히 신학자라는 것이 독서를 하는 데 방해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저자가 신학자인지 종교인인지 무신론자인지 범신론자인지 하는 것은 잘 모르거나 어떤 일말의 느낌이 있다 해도 그저 애매한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코플스톤은 머리말부터 자신은 스콜라 철학자이며 이 책은 철학을 공부하는 스콜라철학도들을 위해 썼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고 보니, 코플스톤이 영국 BBC방송에서 아주아주 오래전 (아마도 20세기 초중반무렵) 버트런드 러셀과의 대담에 출연해 유명한 '신존재증명'을 했다는 일화를 접한 것이 생각이 난다.버트런드 러셀은 아마도 무신론자(또는 무신론에 가까운 신념을 지닌 사람)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담이며 필력 좋은 정력적 철학자 러셀과 한 판(?) 벌인 철학자라니 대단한 신념을 가진 '스콜라'철학자임이 분명하다는 추리를 하게 된다.

코플스톤의 <그리스 로마 철학사>는 설명이 풍부하고 다른 책에서 이해하지 못한 점을 이해하게 된 부분들이 있는데다 다른 학자와 조금 다르지만 아주 설득력있는 저자의 해석덕분에 꼭 끝까지 정독을 하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머리말에서의 '스콜라철학자'라는 선언, 초반부터 주장하는 '고대그리스인들만의 독창성'(동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없고 진정한 그리스인의 천재성이라고 설명하는;;;), 100페이지도 안되어 등장하는 예수의 이름, '단일성', '일자(The One)' 등의 스콜라철학자로서의 컨셉을 암시하는 개념의 강조는...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잡생각이 들어 독서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차라리 코플스톤이 카톨릭 신부라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좋았을텐데. 끝까지 읽고 싶기도 하고 그냥 관두고 싶기도 하고, 한 페이지 넘길때마다 한번씩은 고민에 빠진다. 다음에 읽을 예정인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좀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해, 대척점에 있는 코플스톤의 해석을 꼭 읽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중세철학을 공부할 때는 오히려 스콜라철학자인 코플스톤의 해석이 어쩌면 중세철학과 신학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거 같아, 코플스톤의 철학사 2권인 <중세철학사>를 읽기 전에 그 1권인 <그리스 로마 철학사>를 읽어 두는 것이 내용이 잘 연결이 되리라는 생각에 또 꼭 읽어야지 다짐을 한다. 그러나 의지와 다르게 마음은 자꾸 딴 생각을 한다. 이러다 도서관 대출반납기간인 3주만에도 다 못 읽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83쪽 읽고 있는데...에구에구...신부님 신부님 우리 코플스톤 신부님.....!!! ㅠ_ㅠ
분류 : 공부 2009. 9. 16.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