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시만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철학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아무리 애써봐도 저절로 눈이 스르륵 감기는 한여름의 오후. 무더위와 철학은 어쩌면 최악의 궁합인지도 몰라. 철학책은 정말 기똥찬 수면제다.

아마존에 주문해놓고 3개월째 기다리고 있던 보나르 책은 결국 못구하고 말았다. 지금으로선 아무데서도 구할 수가 없다. 요즘 보나르가 인기인가 왜 볼만한 책이 전부 품절인거야?? 안그래도 미술에 대한 열정이 한풀 꺾여서 르누아르전시도 가기 귀찮고 시큰둥했는데 보나르책까지 못구하게 되니 더 김이 빠지고 말았다. 한달전에 친구 K양에게 10년후에 화가가 될거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던 게 정말 쪽팔리는 요즘이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 조금 식어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림그리기에 대한 욕심이 줄어서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한동안 아크릴화니 유화니 그리지도 못하면서 욕심을 잔뜩 부리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수채화를 그리고 싶고, 또 금방 파스텔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모든 기법, 모든 장르, 모든 스타일에 마음이 온통 빠져가고 있었다. 지금은 좀 진정이 되어 그냥 연필이나 주위에 굴러다니는 펜으로 드로잉만 하고 있다. 많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차근차근 느리게 해 나가는 게 나한테는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절제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열정은 지금의 나에게 독이라는 사실... 그나저나 요즘은 너무 그림에 무관심해져 연필이나 펜, 스케치북이 어디 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아크릴붓은 말라 비틀어졌고 팔레트에는 먼지가 소복이 앉았다. 이 정도로 미술에서 쉽게 헤오나올줄은 몰랐는데. 그 열정, 거품이었던 거야?

근래에 주시하고 있는 철학전문출판사 이제이북스의 책 중 정말 보고 싶은 책이 여러권 있는데 그 중 대부분이 품절이거나 절판이다. 알라딘에서 '재출간알림신청'을 해놓고 한달여를 기다리면서 매일매일 오늘은 안나왔나 둘러보던 중 갑자기 답답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다시 나오긴 나오는 거야? 맘이 동한 김에 이제이북스 출판사를 검색해서 전화를 했다. 사무적으로 친절한 목소리의 고객센터아가씨가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점잖고 느린 목소리의 아저씨다. 품절된 책들은 다시 안 나오냐? 사고 싶은데 재출간계획이 언제쯤인지? 하고 문의를 했는데 청천벽력같은 대답, 재출간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그

러나 절망하기엔 일렀다. 가끔 이렇게 출판사로 직접 전화를 하는 나같은 성질급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창고에 몇권씩 책이 남아 있는데 그걸 직접 보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와! 멋져. 그래서 한달을 오매불망 그리던 책을 5권 샀다. 어렵게 구한 책이니 더 열심히 공부하겠지? 흐뭇해하며. (지금 내 수준으로는 이해불가인 철학책도 있어서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언제나 소화가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겠다. ) 곰도리에게 이 즐거운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곰도리 왈, '홈페이지 만들어준다고 말했나?' 한다. ㅋ

분류 : 공부 2009. 7. 23.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