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고갱처럼 따뜻한 열대에 살고 싶다. 느긋하고 게으르고, 뜨거운 한낮에는 달콤한 낮잠도 자고, 먹는 거 자는 거 생활에 필요한 일 하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단순한 생활을 하는. 거기에다 노래부르고 그림그리고 춤추고 대화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도 조금 곁들여서. 뜨거운 열대가 아니라도 가까운 제주도 쯤이면 어떨까. 아니면 오키나와 정도라면 더 좋겠다. 오키나와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일본사람이 아니라 오키나와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그 또한 멋지다. 바닷바람과 함께 달리는 유스케처럼,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장난꾸러기인 고테츠와 진처럼, 화장실을 폭파할 정도로 강력한 똥을 가진 국회의원처럼 재미있고 낄낄댈 수 있는 생활을 되찾고 싶다.

고갱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기 위해 몇 권의 책을 보고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떤 리뷰어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가정을 내팽개쳐버린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모든 책임을 던져버린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 두달간의 고흐와의 생활에서도 그는 인정받기보다는 오히려 고흐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는 악역으로 더 유명세를 탄 느낌이다. 그의 상징주의적인 그림뿐만 아니라 고흐의 편지들과는 너무 대조적인 현학적이고 자기방어적이고 다소 허세가 낀 그의 글들은 그를 이해하려고 유보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도 그다지 진정으로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모든 것에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어쩌면 가정이라는 현실적인 책임같은 것은 원대한 꿈을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바칠만한 무엇인가를 찾을지도 모른다. 미쳐버린 난폭한 열정을 내면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고갱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그런 광폭한 열정을 숨기고 사는 것이 아닐까. '고갱을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갱을 접하면서 내내 이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굳이 답하자면 '역시 잘 모르겠다'이고 그다지 그 대답이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어떤 면에서는 그를 이해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굳이 그를 이해해야 할 필요도 없고 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이해를 위해 살지는 않으니까 별 의미가 없는 우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자꾸만 '고갱을 좋아할 수 있을까?'같은 질문에 사로잡히는 걸까.
분류 : 그림 2009. 2. 25.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