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에게서 나는 무엇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공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림은 참 어렵다. 미술과 같은 이른바 예술이라고 부르는 분야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면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원초적이고 가장 일차적인 언어이다. 그러나 예술이 감상의 대상, 예술가의 내적 표현이라는 현대적 개념을 더하게 되면서 예술의 감상은 참 어려운 것이 되었다. 예술가의 자의식이나 사상, 철학, 내면이 개성과 독창성이라는 개인적 면과 그가 처해 있는 시대적 배경이라는 사회적 면이 어우러져 표현되는 작품을 타인이 이해하고 느끼고 감탄하는 것은 일차적인 보편적 감각을 넘어서는 일이 되어 버릴 때가 많아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작가의 개인적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 예술적 배경에 대한 아무런 지식없이 어떤 작품을 접할 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취향을 기준으로 느끼고 판단하고 이해하게 된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면 감탄하고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면 공감하지 못하는 단순한 기준이다. 이런 기준은 확고하고 즐겁기는 하지만 호불호의 기본 단계에 머무르기 때문에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 한편으로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술을 '공부'하고 그 이면에 밑칠된 배경과 역사를 탐구한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적인 과정은 매우 광범위하고 때로 힘들다. 예술가의 은밀한 개인사적 에피소드나 가십같은 흥미거리들이 동원되는 것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편이며 미술감상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개인사적 이야기들과 함께 우리가 자연스럽게 취하게 되는 '이해'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은 감정이입이다. 불안정하고 복잡다단하며 멜랑콜리의 이미지를 가진 예술가들에게서 나의 숨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나를 그들에게 그들을 나에게 투영한다. 나는 이루지 못한 꿈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하고 타락하고 지극히 고독한 과거 속의 예술가가 된다. 나는 그가 됨으로써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마침내 그의 작품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안녕하세요, 고갱씨> 1889년 캔버스에 유화

고갱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보편적인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잔과 고흐에게 그렇게 쉽게 되던 감정이입이 고갱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고갱은 고독하고 우울하고 광기어린 예술가의 모습도 조금은 갖고 있지만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모습, 가정에 대한 무책임과 허위의식, 성공에 대한 열망과 계산, 모든 것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 등이 감정이입의 대상으로서는 부적합한 인물로 줄곧 느껴졌던 듯 하다. 정신병자, 심지어 살인자에게도 감정이입은 가능하지만 약삭빠르고 부도덕한 정치꾼에게는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이치라고 하면 과장된 비유일까.

고갱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너무나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감정이입은 내면의 욕구를 해방시키는 무의식적 방법이다. 고갱은 은밀한 내적 욕망이나 개인적 판타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현실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진다. 결국 고갱에 대한 이해는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감정이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를 현재, 지금 이 세계로 끌어들임으로써 가능했다.  그의 모습은 현실사회속의 인간의 모습이고 내 주변인물의 모습이고 내 모습이기도 하다. 진실과 거짓, 열정과 무관심, 책임과 회피, 순응과 반항, 비겁함과 오만함, 자부심과 초라함, 사랑과 무례함으로 가득한 살아있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렇게 고흐와도 세잔과도 다른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는 고갱을 이해해가고 있다. 역사속 인물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과장, 허구, 각색, 맥락없는 인용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조금 경계하면서, 또한 지식으로 작품을 이해하려는 지적인 탐구 과용의 부작용도 조금 경계하면서. Taschen의 Basic Art 시리즈는 관련책들과 함께 참고할 때 더 의미가 커지는 책이다. 밀도있고 가끔 낭만적이기도 한 짧은 작품설명과 단편적인 개인사적 스토리는 맥락과 사실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다른 독서가 뒷받침될 때 훨씬 더 가치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폴 고갱 - 8점
인고 발터 지음, 김주원 옮김/마로니에북스

분류 : 북리뷰 2009. 3. 10. 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