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이라고 하면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원주민부족에 대한 단편적인 장면이다. 여러 학문과 연관된 개념으로 인류학이라는 명칭을 접하게 되는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인류학이라는 학문과 원주민부족의 이미지를 곧장 연결시키기가 어렵다. 인류학이란 뭘까? 인류를 연구하는 학문?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 그런데 왜 항상 인류학에는 원주민부족의 이미지가 붙어다니는 걸까?

원주민부족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호주 등의 깊은 오지에 그들만의 문화를 꾸리고 명맥을 이어가는 원주민들과, 그들을 '동물의 왕국'의 동물처럼 한걸음 떨어진 관점으로 그려내는 '인간의 왕국'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로 동물의 세계를 잣대삼지 않듯이 '인간의 왕국'속의 인간을 우리는 우리자신의 관습과 문화와 제도로 속박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토록 쉽게 (인류학=원주민부족연구) 라는 등식을 떠올리는 것은 인류학의 방법상의 문제가 표면화되었기 때문이지 그리 잘못된 연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이제 이해하는 인류학이란, 사회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행동방식, 사고방식, 태도, 제도등을 신비한 동물의 왕국을 관찰하듯이 외부자의 시선으로 편견없이 연구하는 학문.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는 인간을 조건짓는다. 연구를 행하는 주체인 연구자 또한 한 사회의 산물이므로 그의 연구목적, 방법, 과정이 그가 속한 사회의 문화와 관습에 영향을 받을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특정한 사회의 학습된 틀로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은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는 일, 따라서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원주민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타당한 선택으로 보인다. 또한 고도로 얽혀있는 현대산업사회보다 원주민부족사회의 보다 단순한 생활상이 (광의의)'문화'라는 복잡한 문제를 규명하기에 더 명확하고 적합하다는 것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시공간상의 거리든 문화적 거리든,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의미있는 수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나자신과 주변사람들과 역사속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사고방식이나 행동유형을 반복해서 발견하게 될 때 항상 귀결되는 한가지 의문이 있다. 이것은 대대로 계승되어온 문화적 관습일까, 아니면 인간의 본성일까? 하는 것. 예를 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회에는 수직적인 관념, 즉 계급이나 계층관념이 있는데 이런 계층관념은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사회도 존재할까? 사람들은 현상들을 쉽게 인과관계로 파악하려는 패턴을 보이는데 그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문화적(관습적) 현상인가? 도처에서 발견되는 이분법적 사고는 관습인가 본성인가? 신이나 절대자에 대한 관념은?

나는 이런 의문들에 막연히 '본성의 토대위에 관습이 세워진 것'이라고 두루뭉실 자문자답하곤 하는데,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이런 궁금증들을 명확히 풀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인간류를 파악하는 구체적인 길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것 같아 관심을 끈다. 그 명칭에 고리타분함을 덧씌웠던 선입견은 어느새 훌훌 사라지고, 인류학이라는 이 학문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 (Patterns of Culture)>을 읽다 보니, 어떤 한 문화가 그러한 문화로 특징지어지는 것을 '선택'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부분에 오래 마음을 사로잡힌다. 특히 문화에서의 '선택'을 언어학에서의 '음소'로 비유한 것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20세기 초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에 약간의 빚이 있는 비유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문화의 패턴>에서의 '패턴'이라는 개념과 베네딕트가 말하는 '선택'이라는 개념을 아직 저자의 의도대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해서인지 이 두 단어가 머릿속을 자꾸 맴돈다.

o라는 알파벳을 누군가는 hot이라는 단어에 사용하고 누군가는 cold라는 단어에 사용한다. n과 o라는 알파벳으로 누군가는 no를 만들고 누군가는 on을 만든다. 어떤 사람의 어휘목록에는 주전부리라는 낱말이 선택되어 견고하게 사용되지만 다른 사람의 어휘목록에는 군것질이라는 낱말이 있다. 문화에서 '선택'이라는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비유/해석해 본다면 베네딕트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요즘 '인류학적인 시선'이라는 말을 생각해 놓고 흐뭇해 하고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인간을 들여다 보기. 그것을 통해 내가 속한 사회의 인간의 부조리함을 해석하고 개선의 여지를 탐색하다. 며칠전부터 읽기 시작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인류학뿐만 아니라 특정 기질을 공유한 집단으로서의 인류학자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갖게 한다...


분류 : 북리뷰 2009. 12. 17.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