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철학에 퐁당 빠졌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해석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자 집어들었던 남경태의 <철학>은 다른 독서를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고 진지했다. 미술책들은 한켠으로 물러나 먼지를 뒤집어쓰고 철학책이 한권 두권 자리잡기 시작했다. 남경태의 <철학>을 통해 공부에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주로 가는 인터넷서점인 알라딘과 인터파크에서 철학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제이북스]라는 철학전문 출판사를 알게 되었다. 이제이북스 전응주사장의 인터뷰와 기사를 보니 실천하는 지성의 냄새가 폴폴, 소신있고 철학있는 사람인 듯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철학의 고전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접하게 하고 싶다는 바람과 의지가 참 꿋꿋하다. 철학책 한 권 출간할 때마다 사재를 털고 적자가 쌓여간다는 출판사의 사정은 너무 안타까워 내가 홈피라도 만들어 줄까 블로그라도 만들어 줄까, 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그 흔한 홈피도 없다니) 출판한 지 3-4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절판인 책도 여러권이다. 이 출판사의 책은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사놔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침 알라딘에서 50% 행사중인 이제이북스의 문고판 철학책 시리즈인 아이콘북스를 10권 샀다. 한권에 2500원. 횡재했다며 신나했는데 도착한 책을 한권 한권 넘겨보고 이제이북스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생기고 그냥 행사 안하는 서점에서 제 돈 주고 살걸 그랬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고판이나 기획시리즈는 쉽게 만든 책의 단점이 두드러져서 거의 사지 않는다. 얼마전 시공디스커버리총서의 <보나르>를 읽고 맥이 풀려서 이제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혹시 문고판은 아닌지 책의 사이즈와 분량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제이북스의 아이콘북스는 일반적인 문고판과는 좀 다르다. 다중모드편집이 아니고 본문에 집중할 수 있게 딱 본문으로만 구성된 단일모드편집이다. 보란듯 복잡하게 비주얼만 앞세운 책들과는 달리 아이콘북스는 촌스러울 정도로 글자밖에 없는데 거기에서 오히려 예사롭지 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앞에 몇장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짧은 분량에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어서인지 나같은 입문자에게는 독서가 녹록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걱정보다는 두근두근 기대가 더 크다.

어둠이 깊어지고 의혹과 불만에 사로잡힐수록 사람들은 더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요즘 우리 사회는 철학적 사고가 꼭 필요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고 깨닫게 될수록 어둠보다는 빛이 더 강해질 것이다. '평등'과 '정의'의 앞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는 이제이북스덕분에 기분이 참 좋아졌다. 제대로 된 출판사가 멋지게 성장하기를 응원해 본다.
분류 : 북프리뷰 2009. 7. 2.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