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철학책을 보고 있다. 남경태의 <철학> ㅎㅎ.
자신만만 인기폭발강의 컨셉의 남경태님의 책은 언제나 입문자에게 흥미진진하다. 기세등등한 제목의 <역사>에 이어 이번에는 역시 대단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제목을 가진 철학책, <철학>이다. 제목 일단 정말 마음에 들어주신다.^^
남경태님의 책이 매우 재미있다고 느끼지만 한편으로 그의 단언적 문체나 트렌디한 비유, 일면 다소 비약이 있는 논리를 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인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이 분이 더 많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흥미롭게 인문학을 소개할 수 있는 저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현대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은 한길아트의 Art & Ideas 시리즈 중 닐 콕스의 <입체주의>이다. 현대미술로 시대가 가까워오면서 논의가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지는 것 때문에 산만하고 힘들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감정이 미술비평과 미술사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논의가 확대되면서 생긴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전통적' 또는 '주류적' 미술사로부터 '신'미술사, 페미니즘 비평, 마르크스주의 미술사,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을 아우르는 다원주의적 통합적 미술사 및 비평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러한 시각들에는 기본적으로 역사에 대한 역사서술의 문제, 장르를 엄격하게 나누지 않은 문화전반에 걸친 학제적 접근이 토대가 되어 있어 복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상이 회화와 조각, 건축이라는 분명히 구분된 장르에서 문화전반,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시대,사회,정치,역사,경제적 배경으로 전방위적으로 확대된 데다 서양/백인/남자를 주체로 하는 양식적/연대기적 접근이라는 단일화된 관점에서 그 주체도 관점도 불가능한 것이라곤 없을 것처럼 넓혀졌다. 논의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구분도 서로 자리를 바꾸고 혼합되기도 하는, 정말 컨템포러리의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바람직하다, 또한 애초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원했던 방향이기도 하다. (사실 너무 어려워서 좀 불평도 하고 싶다..ㅎㅎ )

그렇게 구조주의, 구조주의 언어학, 후기 구조구의, 탈구조주의, 해체,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기호학, 현상학, 탈식민주의 같은 말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 말을 접하다보니 미술사 책에서도 그동안 잘 눈에 띄지 않던 철학적, 비주류적 해석이 눈에 들어오고 철학적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 더이상 현대미술을 파고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시작한다. 지류를 타고 가다 태평양을 만났다. 뗏목을 타고 망망대해에 들어선 듯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고 막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막연하고 어렵지만 무척 신나기도 하는 여행일 거라 기대해 본다. 그래서 남경태님의 <철학>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비타민같은 책이다.

주말부터는 최순우님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한국미술의 역작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몇달 전에 사놓았던 책인데 그동안 서양미술에 탐닉하느라 머리말만 읽어보고 미뤄두었던 책이다. 사실 서문 몇장을 읽어보고 그 미문에 감동과 충격을 받아 아껴두었던 것이기도 하고, 한국미술이나 한국역사 그리고 우리와 늘 관계해 온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조금 미루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술사의 다양한 해석과 현대의 사상들을 접하면서 서양미술을 둘러싼 영역이 너무 광범위해지는 바람에 이 책을 더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서양의 인문학을 공부하다보니 자꾸 더 깊이 빠져들게 되고, 그 공부를 어느정도(?) 하고 한국미술을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은 정말 순진한 계획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방식이라면 평생 한국미술을 공부하기 힘들 것만 같았다. 같이 읽고 같이 배우고 같이 느껴가기로 계획을 좀 수정했다.

한국미술을 참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 국악을 좀 더 생활속에서 즐기고 싶다. 서양미술을 공부하다보니 우리 미술과 음악에 대해 더 갈증이 생긴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묻어두었던 한국미술과 음악에 대해 이제 본격적으로 느껴보려고 한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최순우님의 글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분류 : 공부 2009.06.22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