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정물화나 풍경화를 무슨 재미로 보는 걸까? 정말 지겹고 따분하다. 정물화나 풍경화는 사진처럼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구식 인물화만큼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잔을 처음 읽을 때만해도 이런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사과를 왜 그릴까? 주전자를 왜 그려? 정물을 그리는 화가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와는 달리 인물화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인간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모란디의 정물작품

한편으로는 미술사와 화가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빛바랜 어릴 적 꿈에 취미로나마 다가가기 위해 그림을 그려보자고 마음먹었다. 극히 제한된 주변환경때문에 내가 그릴 수 있는 인물은 거의 곰도리뿐이었는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 인물은 5분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달라는 애원에도, 때로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얼굴을 그리고 있으면 낄낄거리며 웃고 손을 그리고 있으면 갑자기 그 손으로 코를 판다...... 안그래도 초짜실력, 모델을 가만히 관찰할 수 있기는 커녕 움직이는 모델때문에 낭패다.

너무 활동적인 모델때문에 골치아픈 날들이 계속되니 저절로 드는 생각, 좀 가만히 있는 모델은 없나...? 아, 나도 사과를 그려야겠다. 맘에 드는 물건들을 내 마음대로 배치해놓고 정물을 그려야겠다. 그러면 시간을 갖고 천천히 내가 원하는 빛의 효과를 탐구할 수 있겠구나. 그제서야 세잔이 왜 사과를 그렇게 그렸는지, 왜 화가들이 정물화를 그리는지가 갑자기 이해되는 것이었다. 정물을 놓고 깊이 고심하고 탐구했을 화가들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정물화는 많은 화가들에게 실험과 탐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이제이렇게 정물화에 대해 이해하게 되니 풍경화에 대해서도 저절로 그 가치와 화가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소소한 깨달음은 얼마나 즐거운가. 역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진정으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곰도리의 출장선물

정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돌이켜보니,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정물화가인 조르조 모란디 Giorgio Morandi. 정물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없을 때도 세잔의 정물화는 그나마 무척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갑작스런 감흥을 유별나게 느꼈던 최초의 정물화가 바로 모란디의 작품이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현대미술파트에 살짝 등장하는 모란디의 정물화. 그 정물화는 보는 순간 눈을 사로잡았는데 모란디의 고요함의 미학에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곰도리가 사온 선물, 모란디 책이다. ㅎㅎ
결국 모란디책을 선물받았다는 자랑으로 급마무리~! ㅋ




분류 : 공부 2009. 5. 22.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