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랜만에 인상주의로 다시 돌아왔다.
미술의 넓이와 깊이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미술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인간을 공부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즐거움을 만든다.


Edouard Vuillard: The Studio of The Suitor. 1893. Oil on cardboard.
Ker-Xavier Roussel: Woman before a Green Gate. c. 1890. Oil on panel.


인상주의를 통해 미술의 역사를 접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현대미술에 열광적인 흥미를 느끼면서 인상주의 이후의 다양한 현대미술과 미술가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식상한 인상주의 그림의 지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린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의 표현주의와 키르히너, 헤켈,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크, 마케 등의 화가들, 비슷한 교차점을 가지는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과 나비파 화가들, 마티스와 피카소, 피카소와 큐비즘, 다시 좀 더 고요한 조르조 모란디와 정물화의 세계, 인물화가 아닌 그림(정물화, 풍경화등)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그리고 결국 그 모든 현대미술의 태동-미술의 역사와 인상주의 즈음의 유럽세계-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낭만고등어님이 언급한 보나르를 검색하다가 보나르가 한때 참여했던 나비파와 그 친구들, 뷔야르, 모리스 드니, 폴 세뤼지에 등의 화가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이 화가들은 존 리월드의 <후기 인상주의의 역사>에서 고갱과 상징주의와 관련하여 접한 이름들이어서 마음속에 담아두지도 않고 흘려버린 이름들이다. 나는 고갱이 지긋지긋했고 도무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 고갱의 리뷰를 쓰기 위해 수많은 이름이 등장하는 <후기 인상주의의 역사>를 적당히 걸러가며 보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상징주의와 종합주의 등의 용어는 지극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데다 당대의 문학 및 관련 문인들과 얽혀 있어 너무 어렵고 피로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보나르를 찾아보다 국내에 출판된 읽을만한 책이 없어 결국 아마존에서 <The Nabis>를 구입하여 읽게 되었는데 미술공부를 하는 건지 영어공부를 하는 건지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꺼져가던 인상주의 즈음의 역사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나르와 뷔야르 등의 화가들 (이후 나비 또는 나비파로 부름-예언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나온 단어)은 다양한 양상들이 분출하던 세기말의 아방가르드 현대미술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예술을 추구했던 모양이다. <The Nabis>에서는 그들을 과거의 예술에 파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 마지막 화가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좀 이상하고 세련되지 않게 보였던 나비파의 그림들은 어느 순간 고요하고 미묘한 매력을 지닌 개성있는 그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슬보슬 내리는 실비에 옷이 젖듯이 나비의 그림에 마음이 물들어간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가치 하나는 'art is life'여야 한다는 것.

나비들의 예술에 많은 영향을 준 드가와 세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고갱. 나비로 인해 고갱과 상징주의에 다시 눈과 귀가 열리고 있음을 느낀다. 현대미술의 근저에 버티고 선 드가와 세잔, 쇠라와 고갱을 편견을 한거풀 더 버린 마음으로 <후기 인상주의의 역사>를 통해 다시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게 함으로써 현대미술로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어 준 인상주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다시 조금 더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보자.

분류 : 공부 2009. 5. 4.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