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무용수, 1876~1877

 

발레장면, 1878~1880년경



모자상점에서, 1882년




드가의 그림만 접하고서 그와 인상주의의 관계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외광회화를 그리지도 않았고 모네나 르누아르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화풍, 즉 빛에 따른 대상의 시각적 인상의 변화를 표현하지도 않았다. 부분적으로 인상주의 기법(인상주의 기법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을 사용했고 같은 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상주의 친구들과 밀접하게 교류했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의 그림은 일반적인 인상주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드가의 그림을 보다 보면 유독 눈길이 멈추는 그림들이 있는데 바로 발레를 소재로 한 발레리나의 그림들이다. 알고보니 그의 발레리나 그림들이 '드가'하면 연상되는 그림이라고 한다. '세잔'하면 '생트빅투아르산'이나 '사과', '수련'하면 모네가 떠오르듯이 말이다.

드가는 뭐랄까.. 아주 지적이고 음악적 기질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인물이다. 그의 그림들에서 느낄 수 있는 치밀한 구성, 구도에 대한 탐구는 때로 사과를 그리는 세잔의 태도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형식적 구도의 탐구와 소재의 다양한 대비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갈등과 리듬은 드가의 예술적 기질과 재능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현대적인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의 그림들은 리드미컬한 세련미가 가득하다. 마네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활달함 이면의 무(無)리듬감과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이다. 당시 일본미술과 사진의 영향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 낸 드가의 그림들은 스타일리시한 도회적 인상을 준다.

Taschen의 Basic Art 시리즈 <에드가 드가>를 보면서 플라뇌르(Flaneur)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다소 모호하지만 도시를 느긋하게 산책하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도시적 일상을 관조하며 즐기는 '소요자', '산책자'라고 해야 할까? 언뜻 '한량'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드가를 '파리의 플라뇌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어떤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드가의 무심한 듯 날카로운 시선과 감흥이 플라뇌르라는 말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다.

로트레크는 드가를 숭배할 정도로 존경했다고 한다. 그다지 관련있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화풍이 어떤 교차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렇게 서로 얽히고 설킨 개인들의 관계와 그 관계의 역동성에서 에너지와 흥분을 느끼게 된다. 
에드가 드가
베른트 그로베 지음, 엄미정 옮김/마로니에북스
분류 : 북리뷰 2009. 4. 10.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