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에 관한 아트북 두 권을 샀다.
마음에 쏙 드는 이 두 권의 책을 뒤적이면서 나는 급격하게 감각본능으로 회귀하고 만다.
가슴 두근거리는 열정을 일으키는 매혹적인 것에 대해서는,
지적인 언어와 전문가들의 식견으로 흐려지기 전에,
첫인상과 느낌을 남겨두고 싶다.
글을 읽지 않고 형상에만 탐닉하는 느리고 게으른 본능 그대로.
그래서 '북프리뷰'라는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아마 주로 아트북 프리뷰가 될 것이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에곤 쉴레이다.



Taschen의 베이식아트 시리즈 중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Self Portraits>라는 책이 있다. 서양미술사를 읽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가 두가지 있는데 '자화상'과 '여백'이다. 언젠가 더 깊이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매료되어 있는 주제들이어서, 타셴의 <Self Portraits>를 발견한 순간 당장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책표지를 장식한 그림이 너무 눈길을 사로잡아서이기도 했는데, 그 표지 그림이 바로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국내에 번역된 베이식아트시리즈의 <에곤 쉴레>의 표지 또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에곤 쉴레라는 화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떠오르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낱말들.

패셔너블, 그로테스크, 웅크림, 수줍음, 맑음, 표정, 원초적인, 성난, 일그러짐, 비틀거리는, 멋진, 적나라한, 고독한, 침잠하는, 무언극을 하다, 텅빔, 불안, 흔들리다, 불안정한, 순진무구한, 해맑은, 장난치다, 자부심 가득한, 으스대는, 파고드는, 노려보는, 일렁이다, 그늘진, 동화같은, 막 잠에서 깬, 응시하는, 멍한, 무감각한, 하하하, 바보스러워, 내맘대로, 자랑스러운, 숨통이 트이다, 만화주인공, 인상쓰는, 눈썹에 힘주고 강한 척 하다, 허공, 익살스러운, 순수청년, 앙다문 입, 나를 보다, 나를 사랑하다, 나를 증오하다, 관찰하다, 취한, 느긋한, 괴짜가족, 불거진 관절, 포즈를 취하다, 사춘기, 음침함, 담담한, 부스스한, 숨어있는, 심연, 낙서, 천진난만, 아이같아, 솔직한, 진실, 순교자......



어릴 적 어디선가 쉴레 스타일의 그림을 본 적이 꽤 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속에 저장되어 내 취향을 결정하는 데 무시못할 역할을 했을 것이다.
쉴레스타일의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많은 자화상과 여백 가득한 미완성의 아름다움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그림을 계속 뒤적이다 문득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지 못한 빌리의 할머니처럼
가끔 이루지 못한 꿈이 아른거려 뻣뻣해진 몸으로 춤동작을 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식사 중에 갑자기 눈물을 떨구기도 한다.
가족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때로는 귀엽다고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가장 쓸쓸한 건 그냥 무관심이다.



분류 : 북프리뷰 2009. 4. 3.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