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성당을 다녔던 추억은 지금도 가끔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성탄미사에 참석하고픈 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내 성장기록속에 남아 있다. 내가 다녔던 성당은 규모가 작은 소박한 성당이었지만 카톨릭교회건축의 전통적 특징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오색찬란하게 반짝이던 그 신비스런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하얀 미사포를 쓴 신자들의 모습과 오르간반주가 천상의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던 기억. 성탄절이 되면 그 초월적인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하고 일어나기 싫은 일요일 아침, 성당을 다녀오면 왠지 비워지고 한겹 씻겨내려간 듯한 상쾌함으로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곤 했다. 범신론적 가치관을 가진 기질 탓에 고작 이삼년에 그치고 만 글라라의 생활이었지만(아직도 8월의 글라라 탄생축일이 되면 '글라라야~ 축하한다~'하는 당혹스러운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시절의 성당과 성당에 얽힌 기억들은 내 마음 한 켠에 아직도 진중히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신앙이나 신화, 종교라는 문제는 이성이나 합리성으로 도무지 풀 길이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인 듯 싶다.

시작단계(p.9)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고딕성당 Cathedral>은 신앙의 시대였던 중세의 화려하고 장엄한 고딕양식의 대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을 선으로만 묘사한 세밀화와  간결한 해설로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벼락이 떨어져 낡은 대성당이 심하게 파손되자 쉬트로사람들은 오랫동안 끌어왔던 대성당건립을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넓으며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운 대성당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쉬트로 사람들 모두가 합심하는 86년동안의 장대한 이야기. 건축책임자가 늙어 사망하자 새 건축책임자가 오고, 높은 작업대에서 추락한 십장을 대신해 후임이 오고, 자금이 바닥나 공사가 몇년이나 중단되기도 하는 등, 실제 고딕성당이 건축되면서 부딪혔던 문제들이 이 짧은 이야기속에서 재현된다. 결국 성당건립을 시작했던 사람들의 손자손녀대에 이르러 성당은 완공되고 쉬트로 사람들은 감동으로 가득찬 첫 미사를 맞이한다.

지붕의 형태를 만드는 처마버팀목작업(p.40)

H.W.잰슨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중세의 로마네스크와 고딕성당을 좀 더 깊은 흥미와 관심으로 접하던 중 읽게 된 맥컬레이의 <고딕성당>은 고딕성당자체의 건립과정을 군더더기 하나없이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해될듯말듯 알쏭달쏭하던 궁륭천장이니 버팀벽이니 하는 건축의 실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 또한 높여 주었다. 고딕성당에 매료되어 이런 기념비적인 작품을 쓰게 된 맥컬레이의 열정이 느껴진다. 그의 펜 세밀화는 그 자체로 감탄스럽다. 성당이 완공되고 첫 미사를 드리게 된 쉬트로 사람들의 벅차오르는 감동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정말로 가까운 성당으로 숨어들어가볼까.

"거대한 색색의 깃발들이 2층회랑으로부터 드리워지고 기둥에 달린 촛대마다 불이 밝혀졌다. 성가가 시작되자 성당 안은 아름다운 화음으로 가득 찼다. 참석자 대부분은 성당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손자 손녀들이었다.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외심과 숭고한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86년 동안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매진한 결과 마침내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쉬트로 사람들이 드디어 프랑스 전역에서 가장 길고, 가장 넓으며,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운 대성당을 완성한 것이다."
(p.77~78)

고딕성당 - 10점
데이비드 맥컬레이 글 그림, 하유진 옮김/한길사

분류 : 북리뷰 2009. 3. 26. 1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