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있다. 이 책을 왜 샀는지, 갑자기 기억이 안난다. 아마 알라딘에서 유랑을 하다가 낯익은 제목을 발견해서였던 것 같다. 아..최근에 나온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라는 신간을 보고 원작을 읽어보고싶은 호기심에 구매했다.

현재 국내에 번역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국일미디어에서 출판된 단 한 종 뿐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오래전에 번역된 책은 절판이 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의식의 흐름'기법을 처음 사용한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지난한 만연체, 그리고 상당히 직역투의 번역이 독서를 매우 힘들게 한다(의역을 하기에 좀 힘들어보이는 문체이긴 하다).  총 7편으로 이루어진 대작인데 국내번역물은 11권으로 출간되어 있어 더 방대한 느낌이다. 나는 그 첫번째권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1>을 이제 겨우 3분의 1 지점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하루에 꼭 한번씩은 포기하고 던져버리고, 그 다음날이면 다시 들추어 읽곤 하는 고역인 독서를 하고 있다.

반쯤은 허영으로 억지로 읽는 듯한 독서여서 이 괴로운 독서를 집어치우고 싶으나, 이상하게 포기할라치면 등장하는 멋진 장면과 표현들 때문에, 조금만 더 읽어보자 하고 자꾸 읽게 되니. 묘하게 애증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한문장 한문장이 모두 화폭에 담긴 그림처럼 시각적인 이 책에 대해 프루스트는 '나의 책은 일종의 그림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의 몇장을 휘릭 넘겨보며 '이 사람 프루스트 흉내냈나?'하고 얼핏 생각했는데, 오늘 알라딘에서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정말 알랭 드 보통이 프루스트에게 영감을 받긴 받았나보다 생각하게 된다. 프루스트의 문학사에서의 위치를 보면 영감을 받지 않은 작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이렇게 프루스트와 관련되는 작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등장하면 할수록 나는 더 이 책을 놓기가 어려워지는게 아닐까,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분류 : 생각 2009. 1. 15.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