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Bill Bryson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빌 브라이슨이라는 저자가 참 돋보이는 책.
이 책을 산지도 한달이 훌쩍 지난 것 같다. 지난 연말 처음으로 자연과학코너에 가서 모종의 흥분을 경험한 후 몇주간 위시리스트에만 넣어두었던 책이다. 저자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은 후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한 호평을 접하게 되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하고 잠시 생각했던 게 전부였던, 사놓고도 왠지 독서가 지루하고 힘들것 같은 선입견에 한동안 멀리 비켜두었던 책.

역시 빌 브라이슨의 재주는 대단하다. 아무리 어렵고 지루한 주제도 가볍고 재미있게, 돌아보게 만드는 법을 안다. 이 책은 인문학책인가? 내가 가졌던 막연한 인상과는 달리 '과학'의 세계와는 친하지 않은 다수의 보통사람이라면 한번쯤 움찔하게 되는 자연과학서적이다. 그것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과학으로 인해 밝혀진 인간과 생명, 우주와 지구에 관한 이야기와 과학의 역사를 한 권에 담으려고 한 대담한 시도가 돋보이는 과학서적이다. 도킨스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부르카의 눈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대한 우주의 이야기에서 극도로 미세해서 역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미세 양자물리학, 화학, 지질학,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빌 브라이슨은 어떻게 과학이 발전해왔고 어떤 문제의식으로 지금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을 더듬어간다. 과학자들의 가십적인 에피소드와 관계, 인생, 운명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문제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때로는 킬킬 웃을수도 있게 만드는 빌 브라이슨의 필력은 감탄스럽다. 그 자신 과학을 어려워했던 어린 시절을 공유하기에 일반인의 관점에서 더 가까이 와닿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빌 브라이슨의 어깨동무가 아무리 즐겁다해도 이 책은 기본적으로 쉽지는 않다. 다루는 영역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다 읽어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이고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니 과학이 무척 재미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약간은 허위적인 관심을 가졌던 물리학(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뿐만 아니라 절대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 편견을 가졌던 화학까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니 대단한 성과가 아닌가.

이 책은 다루는 주제의 성격상 집중해서 천천히 정독할 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작은 독서등 하나로 조명을 밝히고 빌 브라이슨이 이끄는대로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때로 눈을 감고 우주의 광대함과 지구의 오묘함, 화산폭발과 행성충돌의 무섭고 압도되는 장면, 미생물이 지배하는 세상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상상하다보면 어느새 모든 것의 중심은 인간이라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피할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나 한껏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우주와 지구, 생명과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끼게 되는 이 기분좋은 경험!

이 책은 올해 나의 과학교과서가 되어줄 예정이다. ㅎㅎ

한국어판 제목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원제 :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저자 : 빌 브라이슨 (Bill Bryson)
번역 : 이덕환
출판사 : 까치글방
분류 : 북리뷰 2009. 1. 14.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