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명의 학자와 학파를 검색하고 200여권의 책을 보관함에 담았다. 단편적이고 피상적이지만 역사학이란 학문이 걸어온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아홉명의 학자를 알게 된 것, 다름아닌 이 <탐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지만, 역사학과 그 흐름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공부가 되었다. 전문가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일 듯 하다. 그리고 나처럼 두루두루공부를 갓 시작한 입문자에게도, 구어체적인 인터뷰글의 특성덕분에 어렵지않게 완독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모르는 개념, 모르는 학자, 모르는 이름들이 쏟아지지만, 그래서 처음 접하는 새로운 말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여 깊이있는 독서가 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얻은 것이 참 많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혹시 마법의 책이 아닐까? ㅋㅋ

이 책의 원제는 The New History. 고전적 역사학에 대한 반응, 또는 반작용으로 일어난 다양한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역사학의 조류(들)를, 현대역사학의 거장 9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각도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아홉명의 역사학자들은 미시사, 문화사, 역사인류학,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현대 역사학의 성격을 보여주는 개념들과 더불어 설명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들이 이러한 신역사학의 태동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좀더 관심이 갔던 사람은 키스 토마스(Keith Thomas), 저자의 남편인 피터 버크(Peter Burke),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인데, 아마 내가 지난 일년간의 독서에서 주워들은 것, 맘에 담아놓고 있는 것들과 가장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즉 내가 그나마 좀 더 알아들을만한 이야기가 이들의 인터뷰글에 많이 나와서였던 것 같다. 깐깐하고 단호한 인상을 풍기는 사진과는 다르게 왠지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키스 토마스의 저작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게 없다니 아쉬운 소식. 소개된 9명의 학자 중 내가 알고 있던 학자는 단 한명도 없었고 읽어 본 책도 전무했는데(관련있는 영화 하나 봤다. 나탈리 제이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헐리우드판 영화 <써머스비> -.-; ) 알고 보니 참 유명한 학자들이었다. 국내에 번역된 책도 꽤 많고 그 책들에 달린 그 수많은 리뷰들이란... 암튼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 새롭고 낯선 세계속에서 한번씩 어디서 본듯한 풍경을 접할 때면, 조각그림맞추기의 한 조각을 꿰 맞춘 것처럼 흥분이 된다.

다음번 독서는 일찌감치 <굿바이 E.H.카>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멍해진다.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나 <베난단티>도 당장 읽어보고 싶고(이 책들이 <몽타이유>보다는 얇다 ㅋ ),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나 피터 버크의 <문화사란 무엇인가>,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같은 책으로 좀 더 파고들고 싶기도 하고, <황금가지>같은 책을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갑자기 봇물처럼 쏟아지는 읽고 싶은 책들... <탐사>를 통해 역사와 역사학에 대한 대단한 길안내를 받은 것 같다. 이 아홉 학자들의 저작을 한권씩이라도 읽어본 후 다시 읽을 <탐사>는 첫번째와는 또 다른 아주 멋진 독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분류 : 북리뷰 2009. 11. 20. 16:19